내 인생의 영어스토리 - 2탄

내가 '이재룡 할아버지 297시간만에 귀를 뚫다'라는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방일권의 영어클리닉을 읽고, 영어를 하는데는 듣기가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내게 딱 꽂혔을 것이다.
이재룡할아버지는 무역업에 종사하시던 분이시라, 평소에 영어를 접하는 환경이지만, 영어가 들리지 않아 무척이나 답답하셨다고 한다. 펭귄리더스 책에 딸린 영어테이프를 듣고, BBC 뉴스를 꾸준히 듣던 어느날 갑자기 영어가 다 이해되기 시작하셨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내셨다. 그리고 영어 듣기의 중요성을 전도하기 시작하신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펭귄 리더스의 책을 구입해서 무작정 듣기 시작했다. 하나도 들리지 않고, 잠이 왔다. 운전하면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듣고 또 들었다. 반드시 될꺼라는 믿음으로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듣던 어느날 정말 거짓말처럼 내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점점 다른 테이프를 듣고 이해하는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고, 레벨이 올라가면서 신났다.
영어듣기에 자신감이 생긴 나는 그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충격적이었다. 나의 발음은 내가 들었던 발음과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내 입은 내가 들었던 소리를 전혀 구현해내지 못하고, 생각하던 발음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듣기만으로는 내가 소리내어 말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실망스럽던지. 내가 내는 소리가 너무 어색하고 딱딱해서 부끄러웠다.

그래서 방법을 찾기 시작하다가 박코치의 '영어 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실제 원어민이 쓰는 영어 컨텐츠를 가지고 따라 말해야 영어가 들리고 말을 할 수 있다는 컨셉을 홍대리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알려주는 책이었다. 당장 박코치 어학원을 수강하고 싶었지만, 지방에 사는 나에게는 거리상 불가능했다. 박코치 소리영어 웹사이트에서 스터디 멤버를 만나서 같이 연습을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1-2시간동안 만나서 스터디 시간에는 되든 안되든 영어로만 말했다. 프렌즈 드라마 쉐도잉을 하고 같이 롤플레잉을 하면서 익혀나갔다. 같은 목적을 가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영어를 익히는 과정은 무척 재미있고,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렇게 영어를 익히기 시작하니, 점점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은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 마침 개최된 회사내 영어말하기 대회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우여곡절끝에 미국수의사의 꿈을 접고 영어강사가 되었다. 평생을 보장하는 공무원을 박차고 나와서 영어강사가 된다고 했을 때, 집안은 물론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걱정과 만류는 대단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내 뜻대로 10년의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초중등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내가 몸 담았던 영어학원은 1시간 반의 수업동안 영어로만 진행을 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었다. 체조로 수업을 시작하고, 명상을 하며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수업 전체가 영어로 진행되었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수업시간에 쓰면 경고용으로 푸쉬업을 3번 하고, 다시 영어만 쓰게했다. 원서로 된 짧은 동화책을 듣고, 집에서 말한 것을 녹음하여 들고오는 것이 숙제의 일부였다.아이들은 영어환경에서 쑥쑥 영어를 영어로 받아들이는 것이 빨랐다.
나의 목표는 아이들이 영어에 흥미를 가지고 글로벌 인재로 자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강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고학년이 될수록 부모들은 학교성적이 실제적 영어실력 향상보다 더 중요했고, 중학생이 되면 나는 입시영어에 매달리게 되었다. 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고, 다시 잃어버렸던 미국수의사의 꿈이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