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하건데 나는 정리를 잘 하지 못한다. 신혼때는 내가 음식을 하나라도 만들면 부엌이 폭탄 맞은 것처럼 변해서 남편이고 친정, 시댁 식구들이 요리하는 나를 말릴 정도였다. 지금도 딱히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때처럼 폭탄을 투하는 정도는 아니다.
자유로운 삶으로 가기위해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정리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나에게 요리하고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들이다. 딱히 즐기지도 않고, 퇴근후 부엌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잘 시간이 되어 허무하기도 하다.
부자들의 집은 항상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한 사람의 방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상태와 현재 사는 방식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엌을 통해 본 나의 정신상태는 산만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 인생에 있어 정리정돈은 항상 아픈 손가락이다. 해야 하는데 잘 하지 못하고, 어느 날 의욕에 차서 후다닥 정리를 한다고 해도 몇일 못 가서 원상복귀가 되고마는. 그래서 더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
특히 우리집 부엌은 내 가슴을 퍽퍽 치고 싶을 만큼 답답함을 준다. 내 시간의 많은 부분을 부엌에서 보낸다. 요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든다. 딱히 배달음식이 다양한 것도 아니고, 맛있는 외식장소가 많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음식값이 비싸서 집밥을 해먹는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만족스럽지 않다.
부엌공간이 집 크기에 비해 너무나 작다. 캐비넷 공간도 너무나 협소하다. 집은 평균적인 주택의 크기인데 부엌만은 방하나짜리 아파트에 딸린 부엌보다도 작다. 전에 살던 집주인들은 음식을 거의 해먹지 않았나보다. 레노베이션하면서 부엌의 캐비넷 공간을 다 없애버렸다. 그래서 항상 조리도구, 그릇, 각종 양념통들과 주방기구들이 카운터에 넘쳐난다.
살림하는 주부들, 정리정돈하는 유튜브를 보아도 감탄만 할 뿐 나와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바꾸어 보기로 했고, 지금 조금씩 적용하고 있는 방법이 효과를 보고있다.
첫번째, 생각하며 정리하기
정리정돈의 달인들이 항상 강조하는 게 자신이 동선과 사용빈도에 따라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정리를 위한 정리를 했을 뿐 내가 얼마나 자주 쓰는지, 어떻게 배치하는 게 편리한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어떤 물건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 나자신을 관찰하면서 물건을 배치해나가고 있다. 이 그릇은 내가 얼마나 자주 쓰는가? 매일 요리할때 무슨 양념을 주로 쓰나? 보고 생각한다. 지주 쓰는 양념은 한 박스에 모아서 스토브 가까이에 배치했다. 자주 안쓰는 양념은 멀리 치우고, 빈도에 따라 재배치 중이다.
두번째, 틈새 정리
한번에 몰아서 정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전자렌지에 국을 데우는 2분동안 가볍게 정리를 한다. 국수를 삶기 위해 물이 끓는 5분동안 설겆이를 한다. 냉장고 정리를 한다면 딱 5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하고, 그 시간만 하고 그만둔다. 이렇게 조금씩 하면, 지치지 않고 부담이 덜해서 지속할 수 있다. 조금씩 자주 계속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정리된 공간을 보게 된다.
세번째, 그날 조리할 수 있는 만큼만 장보기
장만 보러가면 의욕이 넘치는 나는 항상 욕심껏 장을 보았다. 이것도 해먹고, 저것도 해먹고. 하지만 현실적인 시간의 한계와 재빠르지 못한 요리솜씨로 항상 재료를 썩혀 버리기 일쑤였다. 버릴때마다 돈도 돈이지만,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어서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서 딱 그날 할 수 있는 양만큼만 장을 본다. 쌀이나 건조식품같은 저장 음식들은 상관없지만, 신선한 채소, 고기, 생선등은 내가 이것을 오늘 요리할 수 있나 따져보고 사게 되었다. 냉장고도 넘치지 않고, 재료 파악이 쉬워져서 음식물 낭비가 적어졌다. 자주 장을 보더라도 훨씬 경제적이고 장보는 시간도 줄었다.
네번째, 편리한 조리도구 이용하기
최근에 산 인스턴트 팟과 사랑에 빠졌다. 렌지에 올려서 압력밥솥에 밥을 하면, 항상 타이머를 맞춰놓고 꺼야했는데, 이 기특한 아이는 알아서 밥하고 압력도 빼준다. 멸치육수도 20분만에 진하게 우려내고, 국을 만드는 것도 쉬워졌다. 가스불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야채를 잘게 다져주는 chopper도 너무 편하다. 모양은 떨어져도 죽, 볶음밥 만드는데 야채 써는 시간을 줄여준다. 채칼도 마찬가지. 소소하지만 편리한 도구들을 잘 이용하면 요리시간을 줄여준다. 식기세척기도 효자상품이다.
다섯번째, 밀프렙 하기
직장을 갔다와서 저녁을 준비하다보면 참 별것없는 저녁인데 준비하는데 한두시간은 기본으로 걸린다. 시간대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기운이 빠진다. 밀프렙을 하면 요리시간을 줄일 수 있다. 나는 국을 끓이면 일부는 덜어서 냉동해둔다. 그러면 기본 반찬과 밥으로 저녁을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파도 썰어서 냉동해두고, 고기도 미리 필요한 만큼 썰어서 냉동해둔다. 이렇게 미리 미리 준비해둔 재료가 시간을 아껴준다.
여섯번째, 장보러 가기 전 냉장고 확인
참 간단한 일인데 잘 하지 않아서 장보는데 자꾸 까먹고 못 사오거나, 있는데 또 사오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장보러가기전 힐끔 냉장고 문을 열어 확인한다. 재고를 파악하니 장보기가 수월하다. 평소에 사야지 생각나는 것은 바로 메모를 해놓으니 더 효율적이다.
위에 있는 6가지를 실천하면서 부엌이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한 두달뒤에는 깔끔하게 정리되고 평소에도 계속 유지되는 부엌이 될 것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부엌을 잘 정리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먼지같은 성공으로 나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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