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을 친구라고 표현하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평생을 함께 가야할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나는 3년 반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었다. 이전에 글쓰장 챌린지를 할 때 이것을 주제로 '암에게 감사하다'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 그 글을 쓰고 그날 엉엉 울었었다. 내가 겪어온 일들은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알든 모르든 우리 몸에서는 매일 암세포가 생겨나고 매일 면역세포에 의해 제거가 된다. 겉으로는 건강해보여도 우리 몸에는 암세포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열일하는 우리의 면역세포가 다 제거해 준다. 하지만 이 면역세포 시스템이 암 세포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암세포가 쌓이기 시작하고 어느 시점에는 암으로 진단받게 된다. 암은 80% 이상의 시간이 잠복기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타난다.
어제 친한 언니에게 몸에 이상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본인은 아니지만 실감이 안났다. 그리고 내 기억은 3년 반전에 내가 암진단을 받았던 그 순간으로 소환이 되었다. 실감이 안 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알기 전에 어느 정도 예감을 했을 것이다. 내가 과거에 그랬듯이.
암이라는 친구는 평생 알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알게 되면 나름 의리있는 친구다. 나에게 손을 내밀기 전에 여러가지 암시를 미리 준다. 면역력이 떨어지니, 감기에 자주 걸린다든지. 대상포진이 온다든지, 알러지가 심해진다든지 하는 증상을 보여준다.
진단 받기 전 내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만성 증상이던 알러지성 비염이 심해져서 잔기침과 가래를 달고 살았었다. 캑캑거리면서 숨쉬기가 힘들어, 마스크를 끼고 살았다. 때가 딱 코비드가 시작되던 때라서 어쩌면 나에게는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항상 피곤했었다. 그것도 다른 증상이었다.
암이라는 친구를 인정하게 되면 그 다음으로 찾아오는 것은 죽음이라는 다른 녀석이다. 죽음은 공포를 불러온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막연한 생각이 바로 내 코 앞에서 고개를 들이민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보다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이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재밌는 것은 이 죽음이라는 것을 회피하려면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 생각외로 정리가 빨라진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누구도 그것이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암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지만, 불의의 사고로도 죽을 수 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작아졌다. 공포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다. 자꾸 회피하려면 더 커진다. 직면하고 내게 주어진 하루 하루에 감사하다보니 그 녀석의 덩치가 작아졌다.
나의 하루를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두려움에 떨것인지, 아니면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아직 살아있음에 그리고 그 주어진 시간을 내가 활용할 수 있음을 알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것 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바뀌었다. 암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나는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암이라는 친구에게 감사하다.
암이라는 녀석이 나에게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힘든 인생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모쪼록 언니도 힘든 상황을 잘 넘겨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것이 언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니에 여정에 동참할 것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화해하고 다독였던 시간을 가졌듯이, 언니도 언니만의 시간을 통해 잘 헤쳐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퀀텀점프 스토리 > 성장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틈새작전으로 하루를 두배로 사는 법 (2) | 2024.01.25 |
---|---|
두려운 것이 있다면 실행이 답 (1) | 2024.01.23 |
47번째 생일에 나 자신과 마주하다 (0) | 2024.01.19 |
나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1) | 2024.01.18 |
퍼스널 블랜딩은 나를 녹여 내는 것이다. (0) | 2024.01.17 |